[서정민갑의 레드카드]
 
 

오늘, 민중가요는 어디로 가야 할까?

 
 
 
자본주의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인류가 자본주의를 선택해서 살아가는 시간은 인류 역사 가운데 아주 잠깐뿐이라고. 자본주의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의 역사를 보면 원시공산제보다, 고대노예제보다, 중세봉건제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수많은 이들은 여전히 자본주의가 천년만년 이어질 거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진보 진영이나 진보적 의식을 가진 이들도 민중가요가 널리 불려질 때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민중가요의 시작을 1970년대 후반부터라고 보더라도 민중가요가 인기를 끌었던 시간은 채 20년이 되지 못했다. 한 때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2집이 50만장 이상 팔리고, 전국의 모든 대학가에 민중가요 노래패가 결성되었을 때만 해도 이러한 흐름이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IMF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는 민중가요 문화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그보다 앞서 한총련의 과도한 투쟁과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은 학생운동을 궤멸시켰고 IMF 이후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정부는 노동자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몰아넣으며 개별화된 생존의 공포를 무기로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학생운동 조직과 노동운동 조직을 기반으로 했던 민중가요 운동은 기반이 흔들리자 급속하게 약해졌다. 민중가요를 부르고, 음반과 공연을 구입하고, 새로운 곡을 창작하고, 민중가요 진영의 새로운 인자를 배출해내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흔들리자 민중가요 운동은 순망치한의 처지가 되어버렸다.

민중가요 노래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민중가요 운동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오랫동안 민중가요 운동을 해왔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전망을 찾기 위해 음악 활동을 중단하거나 기존의 노래패 활동에서 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솔로로 독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덕분에 민중가요의 음악적 양식과 정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훨씬 다양해졌지만 그들 역시 약해진 조직적 기반 위에서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기존의 사회운동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투철한 신념으로 고단한 현실을 감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2000년대 이후 민중가요 진영은 버티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물론 윤민석과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인터넷을 활용하고, 반미통일운동의 성장과 맞물려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게다가 2008년 촛불 이후에는 사회적 현장에서도 민중가요를 공유해서 저항을 펼치기보다는 서울 홍익대학교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함께 하는 경우가 훨씬 늘었다. 저항의 주체가 시민사회운동조직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들이 아니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계층으로 바뀐 때문이었다.그런 자리에서 민중가요가 공유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때 향유되는 민중가요는 지금의 민중가요가 아니라 과거의 민중가요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매년 새롭게 출시되는 민중가요 음반이 채 열 장도 되지 않고 민중가요 창작자와 창작집단의 콘서트가 채 다섯 번도 되지 않는다. 물론 민중가요 운동이 음반 발표와 콘서트라는 형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활동들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노래는 훨씬 늘었고 집회나 문화제에 함께 하는 음악인들도 예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지만 주로 인디 뮤지션들이 펼치는 활동을 두고 민중가요 운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중가요 운동을 규정하는 것은 노래를 삶과 실천으로 연결하는 행위이며 개별적 음악활동이 아닌 집단적 운동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중가요 운동의 맥이 끊어진 것은 한 두해전의 일이 아니다. 아직 남아있는 민중가요 음악인들은 대부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새로운 창작곡을 내놓고 새로운 활동의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노래패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며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겸하고 있는 백자는 홍대 앞 라이브 클럽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벼리고 알렸다. 최근 거의 동시에 새 앨범을 내놓은 문진오와 윤미진의 경우도 그들이 노래를찾는사람들과 꽃다지에서 활동하다 독립해서 벌써 4번째 음반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백자의 경우는 블루스와 포크를 결합시킨 음악으로 라이브 클럽 중심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문진오와 윤미진의 경우에는 포크와 포크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번 앨범에서는 포크와 록의 어법들을 비교적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 사회적 메시지나 인간과 자연, 역사에 대한 믿음에 국한된 노래,정답만을 말하는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 고민과 갈등까지 드러낸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최근 솔로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이광석, 정윤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결코 많지 않은 민중가요 음악인들조차 운동조직에 의해 엄호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처럼 창작자 겸 가수인 자신들의 시각과 목소리를 드러내는 음악들을 펼쳐보이면서 개성과 현재성이 드러나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들의 음악이 포크 중심의 정형적인 어법이나 서정성이라는 정서에 매어 있음으로 인해 새로운 시대와 만나지 못하고 새로운 활력과 저항의 발칙함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향, 보다 많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개척하지 못하는 한계는 여전히 민중가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 메어있지 않고 현재의 음악 어법을 적극적으로 받아안는 시도와 현실을 음악으로 담아내려는 음악인들과의 실천적, 음악적 연대 그리고 이러한 음악을 독자적인 기획과 마케팅으로 확산시키는 시도가 없다면 현재의 고군분투는 그저 몇몇의 개인적인 고군분투만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더이상 민중가요 문화가 진보진영의 하위문화로 향유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2013년의 정서와 어법으로 직조한 새로운 민중가요의 음악 언어이며 기계적인 주체와 구호적인 인식의 틀을 깨는 새로운 저항주체의 형상화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쉽게 희망을 말하지 않고, 쉽게 익숙한 정서와 어법에 기대지 않으며 실존에 기반한 분노와 저항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동시대적 음악 언어를 내면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기획하고 연계하며 확산시킬 수 있는 기획적 시도들과 통로의 구축도 중요하다. 

빛나는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노래보다 지금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노래로 더 많은 상상과 사유와 해방을 펼칠 수 있게 하는 노래가 필요한 오늘이다. 이런 얘기, 같이 한 번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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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서정민갑 | 대중음악 의견가 | bandobyul@hanmail.net    
 
음악운동단체에서 일하며 음악 글쓰기를 시작.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함.
 대중음악웹진 가슴 편집인과 대중음악웹진 보다의 기획위원을 맡았고 
2006년~2008년까지 '민중가요 기본콘텐츠 수집사업'을 기획/진행. 
2009년~2010년에는 펜타포트 페스티벌 평가연구, 콘서트,
<권해효와 몽당연필> 콘서트 등 공연 기획/연출.
현재 네이버, 다음, 보다, 재즈피플, 100Beat, 미디어 오늘 등에 기고 중


Posted by 어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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