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이 어쨌길래
한동안 모텔을 부지런히 들락거린 적이 있다. 2~3만원을 웃도는 고비용을 구태여 감수하면서 그곳들을 찾았던 이유는 모텔하면 흔히 연상되는 이성과의 '성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며 대부분 '숙박'을 위해서였다. 선천성 떠돌이로서 외박을 즐기던 내 기질 탓도 있겠지만(덧붙여 성인방송을 원없이 볼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다만)
모텔을 찾는 나에게는 몇가지 습관이 있다. 객실에 비치된 물건을 들고나오는 것인데, 그대로 두고 나오기 아까운 면도기나 칫솔 커피 따위를 주머니에 숨겨 나오는 게다.(전날밤 허영의 대가로 치른 술값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은 뭐랄까, 궁상맞다고 해야할까?) 대담하게 헤어드라이나 삼퓨, 로션, 타올 등을 '슬쩍'하는 차원은 아니지만 이것도 남의 시선을 피해야만하는 일종의 '허가된' 도둑질이기에 은근히 스릴도 있다.
잡스런 물건을 챙기다 보면 흔히 망설임의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의 제공자는 바로 '콘돔'이다. 숙박을 위해 들어온 사람에게 침대 맡에 놓여진, 그것도 꼭 두 개씩 짝을 맞춘 이 물건은 '잉여'도 아니요 '우수리'도 아니다. 단지. 모텔 속에서 벌어지는 일반적 행위(?)에 동참하지 하지 못한 채 홀로 숙취를 달래며 걸어나오는 청춘에 대한 '조롱'의 의미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 콘돔을 주머니 가장 깊숙한 곳에 밀어둔다. '고도를 기다리듯' 가까운 장래에 결코 실현되지 않을 '그날'이 올 것이란 어리석은 기대를 품어서가 아니다. 기욤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사람은 꼭 희망이 있어 모든 일을 기획하는 것은 아니며, 꼭 성공을 할 수 있어 끈기있게 밀고나가는 것은 아니다"
콘돔이 가장 주머니 안쪽에 있으면 즐거운 기분이 든다. 부대끼는 인파 속에서 저 홀로 '준비된' 자의 은밀한 만족이랄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도토리를 한주먹 머금은 다람쥐처럼 양주머니를 부풀려 모텔밖 거리에 나서는 내 모습이 우울하다. 콘돔은 그 우울함의 메아리가 채 끝나기 전에 대개 하수구나 길옆 쓰레기통에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버려진다.
"콘돔이여 나는 너에게 안녕이란 말을 하고 싶구나"(우리 엿같은 젊은 날)
문제는 항상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서 발생한다. 모처럼 집에 들러 빨래감을 달라는 어머니에게 무심코 건넨 바지. 미처 버리지 못한 미련처럼 주머니 속에 웅크리고 있던 콘돔이, 그 이물스런 놈이 덜컥 빠져나온 것이다. 순간, 두 사람 사이는 진공상태가 되고 만다. 아무리 허물없는 모자지간이라지만, 더욱이 '성관계'가 당연한 장정한 아들이지만, 나는 갑자기 '성관계는 없다'는 라캉의 전언을 어머니에게 두서없이 확인시켜드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월간손대선 & http://kpaf.kr / 손대선 기자 sds1105@newsis.com/기사는 그대로, 재배포는 맘대로!]
[부산대 점]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3동 423-17번지 제영 빌딩1층
http://blog.naver.com/
http://jabji.tistory.com
'월간내이름 > 월간손대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간손대선_2호]첫사랑 (0) | 2013.03.0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