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학퀴즈의 전설
‘고메’는 왜 정답이 되지 못했을까?
<전설의 시작: 물고메>
일요일 아침시간 아이들을 테레비 앞으로 끌어다 모은 푸로들이 있었으니 쌀국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 원조 시트콤 중 하나인 <한 지붕 세 가족>, 그리고 전국 엄친아들이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쓰며 누구의 뇌가 더 쫄깃한가를 겨뤘던 <장학퀴즈>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장학퀴즈>는 누가 장원을 할까 하는 호기심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이를테면,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가족 가운데 먼저 답을 외쳐서 우쭐거려보려는 아이들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너도나도 귀를 쫑긋하며 사회자 차인태 아저씨의 입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던 푸로가 바로 <장학퀴즈>였다.
1973년에 첫 방송을 했으니 무려 40년 동안 이어져 온 장수프로그램답게 <장학퀴즈>에 얽힌 일화는 너무도 많다.
오늘은 그 <장학퀴즈>의 가장 강력한 한 방, 바로 장학퀴즈의 전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른 바, 물고메 사건으로 이름 붙여진 이 <장학퀴즈>의 전설은,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때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 때,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물론이요, 아직까지도 그때 받은 충격이 씻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는 인터넷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당시 <장학퀴즈>에서 그 한 문제를 맞히면 장원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때, 뇌의 크기와 쫄깃함을 겨루는 엄친아들에게 주어진 문제는 ‘구황작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 어쩌고 저쩌고였다.’ 아마도 그때 난 가족 가운데 제일 먼저 ‘고구마’라고 크게 외쳐놓고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날까 말까 하다.
진지하게 삑, 단추를 누른 엄친아1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방청객과 시청자를 모두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말았으니, 그의 대답은 바로 “고메”였다. 웃음을 참지 못해 꺽꺽대는 방청객들, 아마 테레비 앞에 앉았던 모든 사람들도 안타까움 반 웃음 반으로 이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회자 차인태 아저씨는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며 힌트를 하나 주었다. “세 글자!”
사람들은 웃지, 당황스럽지,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
당황한 이 엄친아1, 끝내 역사를 써 버린 한 마디를 내뱉고 만다.
“물고메”
이 한 마디로 역사는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되었으니,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뜬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터넷 공간에 퍼졌지만,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장학퀴즈에 차석을 두번이나 했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까지.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이다. 이야기는 늘 신화화하려는 속성이 있기 마련.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는 가려진 신화가 있다.
<‘고메’는 왜 정답이 되지 못했을까?>
표준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표준어에 대한 첫 규정은 1912년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에서 “경성어를 표준으로 함”이라 한 것이다. 이후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에서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라고 규정하였고, 이것이 1988년 고시된 ‘표준어 규정’의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규정으로 이어져 왔다.*
(*남경완, 「표준어 규정과 표준어 정책에 대하여」, 『한국학연구』 33집,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41쪽.)
표준어를 쓰려면 서울말이어야 하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니? 표준어를 보급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당시 표준어 보급을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잘 포장되어 있었던지 기억한다. 마치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고, 무엇보다 표준어를 써야 의사소통에서 오해할 일이 적어져서 효율적이고 어쩌고를 심지어 시험문제로까지 출제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고메나 물고메, 밤고메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고구마’로 통일해서 쓰자는 것이다. 심지어 고구마는 맞고, 고메는 틀렸다는 것이다. 이건 고구마가 아니라 고메를 먹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부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고구마와 고메가 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학교 갔다 와서 책가방 던져 놓고 놀러나갈 때, 어매가 ‘고메 하나 묵고 놀아라.’ 할 때의 그 고메가 고구마에서는 도저히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입으로 먹어지는 건 ‘구황작물 어쩌고 할 때의 그 사물’일지 모르겠지만, 고메라는 말 속에 담긴 그 생생한 느낌을 고구마는 전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말은 그 영혼의 색깔이나 냄새쯤이지 않을까? 브레히트가 들려준 세상을 온통 흰색으로 칠하고자 했던 칠장이 히틀러 이야기는 표준어로서의 고구마를 강요당한 우리 시대의 이야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색깔 있는 말로 넘쳐났던 화개장터>
너와 내가 쓰는 각각의 말의 색이 만날 때, 세상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옛날 화개장터엔 있었을 것이다.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만나 살 부비며 각자 자기 동네 말로 물건도 사고팔고 흥정도 하고 치근덕도 대어보고 술판도 벌이는 곳. 자기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경이로움 속에서 자기 것의 가치를 또 깨닫는 과정이 거기엔 있었을 것이다.
나의 느낌과 생각이 살아있는 말이어야 한다. 자기 생각과 느낌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도록 말문을 트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엔 말하고 싶은 사람들의 말로 가득 찰 수 있을 테니까. 고메를 고메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민주주의가 자리잡는다. 출생의 비밀 따위 막장 드라마에게 맡기고, 뽀대나게 말하자.
고메,
물고메,
밤고메.
그리하야 인터넷은 물론 내가 말하는 모든 공간을 화개장터처럼 만들어 버리자. 시끌벅적 와글와글 이바구도 하고 놀이판도 벌여보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인 민주주의는 분명 그 속에 있을 것이다.
[ⓒ월간조동흠& http://kpaf.kr / 조동흠 기자 cosmictree@hanmail.net/기사는 그대로, 재배포는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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